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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   (사)한국미술협회   2013-02-07
  조선 막사발과 이도다완 / 정동주 지음   7341


저자소개 : 정동주
1948년 경남 진양에서 태어났다. 시집 『농투산이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해 장편시 『순례자』로 ‘제8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서사시 『논개』를 비롯해 대하소설 『백정』 『민적』 『단야』, 장편소설 『콰이강의 다리』 등 40여 권의 시집과 소설을 펴냈다. 마당극 『진양살풀이』와 오페라 『조선의 사랑 논개』를 쓰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글쓰기 방향을 전환하면서 민족 정체성 연구를 시작했고, 『소나무』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 『어머니의 전설』 『부처, 통곡하다』 등 광범위한 연구 성과를 책으로 발표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오랜 차 생활을 바탕으로 ‘한국의 차 문화’라는 새로운 인문학 분야를 개척했다. 차와 도자기 문화를 꾸준히 탐구하면서 『조선 막사발과 이도다완』을 비롯해 『우리시대 찻그릇은 무엇인가』 『한국 차살림』 『한국인과 차』 등을 출간했다. 현재 한국 차 문화학 연구에 매진하며 관련 저술과 강의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한국에서 서민들의 생활잡기로 쓰였던 ‘막사발’의 다른 이름 ‘이도다완’(井戶茶碗).
이도다완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차인들의 대명물로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에서 국보 대접을 받는 이도다완의 역사와 정체가 무엇인지,
천년의 비밀을 간직한 조선 막사발의 진실을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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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만의 귀향
1998년 여름, 조선 도공 심수관이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TV, 신문, 잡지 할 것 없이 모든 매체들이 앞 다투어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끌려가 일본 도자기 문명을 꽃피운 조선 사기장을 대서특필했다. 어느 미술관에서는 ‘심수관가의 도예’ 전시를 개최해 대통령을 비롯해 정관계, 문화예술계 인사 그리고 일반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 현장에서 우리는 귀족층의 도자기와 다른 신비로운 기물(器物) 하나를 만났다.

막사발. 낡은 물레의 축 위에서 한껏 흔들렸다가 유약통에 텀벙 담가 장작불에 구운 마구잡이 사발이다. 새것일 때는 밥이나 국을 담는 그릇이었다가 오래되어 때가 묻고 금이 가면 막걸릿잔으로, 더 험해지면 개밥그릇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 깨져 흙에 파묻히고 마는 것이 서민 생활잡기의 팔자다.
그런데 이상하다. 16세기 중반 경상도 남쪽 해안지방에서 만들었다는 막사발 수십 점을 일본 차인(茶人)들은 일본 제일급 보물로 받들며 ‘이도다완’(井戶茶碗)이라 불렀다. 고려와 조선을 대표하는 청자도 백자도 아닌 막사발이었다. 일본에서는 이도다완의 투박함과 ‘마구’ 만들어서 나타나는 오톨도톨한 부분에 무사도 정신과 미적 가치를 부여한다. 또한 막사발에서 엿보이는 평범함과 자연스러움을 지혜를 살린 것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하층민의 생활잡기로 추정되는 못생기고 투박한 막사발이 일본 차인들로부터 ‘대명물’(大名物)로 추앙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도다완은 막사발이 아닌 독특한 기물(器物)일까.
같은 것이라면 어째서 일본인들이 그렇게 귀하게 여기며
우리는 왜 잡기로 폄하하는 것일까.
‘이도’(井戶)는 무엇일까.
움푹 들어간 그릇이 흡사 깊은 우물을 연상시켜서일까,
아니면 ‘이도’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이 가졌던 것이라서일까.

이도다완은 언제,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 분명치 않다. 일본으로 가져간 시기와 누가 가져갔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도 이 비밀은 신비에 쌓여 있다. 16세기 임진왜란 이후, 이 독특한 기물은 일본으로 대량 유출되었다. 이 시기 조선 막사발에 열광한 일본 무사들 때문이었다.
1560년을 기점으로 출현한 천재 군인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모두 차회(茶會)를 자주 열었다. 차를 우려 돌려마시는 음차법을 통해 그들은 결속과 신뢰를 확인했고, 이 차회를 연대감을 다지는 기회로 이용했다.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이었다. 그러나 조선 막사발이 이도다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막사발의 평범함 속에서 묻어나는 고귀한 아름다움을 일본 무사층 차인들이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도다완의 미학을 종교적 경지까지 끌어올렸다. 세계적인 동양미술학자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는 이도다완의 평범함과 자연스러움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위로 만들지 마라. 추하다. 자연을 범하려고 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지(知)는 현재의 힘이지만 본능은 역사의 힘이다.
본능은 불식(不識)이면서 다식(多識)이다.
본능이야말로 지혜보다 더 나은 지혜가 아닌가.
이도(井戶)는 숨어 있는 경탄할 자연의 지혜로 생겨난 것이다.”

불과 흙과 바람의 신비, 조선 막사발 그 천년의 비밀을 추적해보자.
찬란한 도예 문명을 꽃피운 우리는 왜 막사발을 내팽개쳤는가!

이 책은 천년의 비밀을 간직한 조선 막사발의 역사를 추적해가는 가슴 뭉클한 드라마다.
우리 사기장과 유물을 마구잡이로 유출한 일본의 수탈 아래 막사발 역시 여느 도자기처럼 가슴 아프게 정체성을 잃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일본에서 수백 엔에 호가되면서 값어치에 눈먼 국내 도굴꾼들을 홀리는 부끄러운 역사의 단편이 되었다.
우리 것이 분명한 문화유산을 소홀히 내팽개쳤다가 다른 나라의 안방에서 본 심정은 어떨까.
저자는 막사발의 비밀을 추적하다가 결국 일본의 국보 ‘기자에몬이도’가 되어 대접 받는 조선 막사발을 대면했다. 순간 저자는 ‘차라리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시원한 저 마당에 내던져 깨뜨려 버리고 싶었다’고 그 통한을 표현했다. 이내 막사발에 대한 국내 관계자들의 무신경에 답답해졌고, 그 뿌리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느 국립박물관 책임자는 막사발 따위를 전시할 필요성이 있느냐고 반문했고, 막사발 재현에 심혈을 기울이는 사기장조차 일본풍 다완의 높은 가격을 염두에 두고 물레질을 하는 현실이었다. 침략당한 역사와 우리 문화재에 대한 무관심과, 포로로 끌려갔지만 400년간이나 성씨를 지키며 일본인과는 혼인도 하지 않고 한국인의 자긍심을 잃지 않으려 했던 조선 도공들의 치열한 장인정신을 우리가 너무 모르는 것에 죄책감이 가득 찼다.
이에 저자는 오랜 시간 막사발의 근원을 찾아다니며 조심스럽게 이도다완의 비밀을 파헤쳤다. 그리고 여러 근거에 맞추어 막사발은 오랜 연원을 지닌 승려들의 법불(法物), 만다라의 법에 따라 제작된 불교미술품이라고 결론 내렸다. 어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속의 생활잡기가 아니라, 조선시대 어느 수행자의 기도로 빚어진 만다라인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그리운 스승, 위대한 스승 석가모니의 마음에 닿고자 하는 불멸의 존경심이 빚어낸 작품이다.

이제 이 그릇의 진정한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서 이제껏 일본 연구자들과 차인들이 이룩해온 미학적 평가 업적 외에 이 그릇을 만든 한국에서 우리가 직접 막사발의 역사와 가치를 재발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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