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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   (사)한국미술협회   2015-10-19
  미술신간서적 안내- [미국의 인상주의 거장화가, 존 싱어 서전트] 조영규, 아트월드   2475
     □ 미술 신간 서적안내- 한글원고.hwp (13386.5KB)




-도서명 : 미국의 인상주의 거장화가-존 싱어 서전트

-내용 : 585쪽, PDF 전자책

-저자 : 조영규 서양화가 및 작가

-출판사 : 아트월드

-도서 유통사 : 교보문고, 리디북스, 밴디앤루니스, 인트파크, 알라딘 등

-가격 : 17,000원

-발간 : 2015.10.15일

아트월드 출판사는 2013년부터 3년간 미국의 인상주의 미술에 대한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맨 처음에 『모네와 지베르니아이츠, 전2권』이었고 『The Ten-미국 인상주의 거장들, 전2권』이다. 이어서 『모네와 가이 로즈』, 『미국의 인상주의 걸작선, 전5권 (풍경화, 바다풍경화, 초상화 및 누드화, 인물화, 꽃과 정물화) 』『모네와 114명의 지베르니아이츠-합권판』을 발간하였다.
또한 필자는 화가들의 중심적인 모티브와 관람객의 취향으로 자주 찾게 되는 ‘화가가 그린 어머니에 대한 모습’과 ‘독서하는 모습’에 대하여 15세기부터 20세기의 거장화가 100명을 선정하여 두 권에 흥미로운 단행본을 발간하였다. 『15c-20c 거장화가 100명-마음의 우주, 어머니』와 『15c-20c 거장화가 100명-생각의 우주, 독서』라는 책으로 다시 한 번 누구에게나 어머니와 독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으며 필자는 연이어 우주(宇宙) 시리즈를 발간할 예정으로 보인다.

사실 국내에서는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유럽 인상주의 화가를 제외하고 정작 미국에 파급되어 [불멸의 화풍]으로 크게 발전시킨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책이 전무한 실정에 이러한 전자책(e-Book)의 발간은 고무적인 일이 되고 있다. 이들 화가들은 거의 모네와 같이 지베르니라는 국제적인 화가마을(Art Colony)을 형성하고 초기 인상주의의 핍박을 이겨내면서 창의적인 실험과 체제 확립에 이바지한 중심인물이었다.

필자가 발행한 전자책은 종이책보다 미술의 원색 그림이 많은 도서출판에서는 가장 적합하다. 이는 종이책의 CMYK(색의 삼원색, 즉 마젠타, 시안, 노랑과 검정을 원색으로 하는 감산혼합減算混合 방식은 명도가 낮아진다)라는 색표현 방식보다 전자책의 RGB(빛의 삼원색, 즉 빨강, 초록, 파랑을 원색으로 하는 가산혼합加算混合은 명도가 높아진다)라는 색표현 방식이 훨씬 원색에 가깝고 선명할뿐더러 현대인의 필수품인 PC, 인터넷 TV, 태블릿, 스마트폰, 전자책 Reader기에서 한번만 구입하면 연동(連動)으로 어떤 장소에서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어 경제적이고 편리하다.

특히 이번에 발간되는 『미국의 인상주의 거장화가, 존 싱어 서전트』는 서구 최고의 초상화가이며 인상주의 화가로서 수많은 걸작을 창작한 존 싱어 서전트(John Singer Sargent)를 소개하는 책이다. 이는 국내 미술계와 일반 애호가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고도 남을 것 같다. 왜냐하면 서전트와 관련된 책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단행본으로 100여권이 발간되었고 또한 요즘 한창 인기가 뜨거운 전자책(e-Book)도 20여권이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19c-20c 유럽의 화가들에 대하여 시선을 모았지만 서전트와 같은 미국의 미술계에 이름난 거장들의 움직임에는 사실 등한시 하여 왔다. 다행히 필자는 서양화가로서 작품의 해설에 있어 보다 체험적인 내용을 가미하여 쉽고도 재미있게 접근하고 있다. 작가는 맺음말에서 585쪽에 달하는 내용의 중요한 사항을 다시 정리하였다.

[에필로그]

존 싱어 서전트(1856-1925)는 19세기 미국의 초상화 및 풍속 화가였다. 그는 윈슬로 호머(1836-1910), 토머스 이킨스 (1844-1916) 와 함께 빅 3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서전트는 차일드 하삼(1859-1935), 윌리엄 메릿 체이스(1849-1916), 존 알덴 웨어(1852-1919), 시어도어 로빈슨(1852-1896), 존 H. 트와치먼(1853-1902), 토머스 윌머 듀잉(1851-1938), 로버트 헨리(1865-1929), 제임스 글렉큰(1870-1938)과 함께 가장 이름난 19세기 미국의 인상주의 10인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중에서 체이스와 헨리 및 글렉큰을 제외하고 나머지 7명은 모네의 지베르니(Giverny) 시골마을에서 한동안 생활한 지베르니아이츠(Givernyites)이었다.

서전트는 미국인 부모가 유럽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정착하여 낳았으며 17세까지 부모를 따라 유럽 전역을 여행을 다니면서 문화적, 예술적인 견문을 넓혔다. 또한 부모는 그에게 개인적인 홈스쿨링으로 음악과 문학 및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외국어를 가르쳤다. 이러한 배경으로 그는 국제적인 화가로 성장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을 구비하게 되었다. 그는 어머니가 아마추어 화가인데다 4세부터 드로잉을 시작해서 69세로 죽는 날까지 쉬지 않고 계속했다. 그는 17세까지 로마와 피렌체에서 전문화가가 되기 위하여 개인적인 사사와 미술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가 18세부터는 파리로 진출하여 전문 화가의 생활을 시작하였고 40대 이후까지도 유럽 각국의 미술관을 찾아다니면서 유명한 걸작을 모사(Copy)해 나간 학구적인 화가의 단면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주로 활동한 국가는 17세까지 이탈리아에서, 18세 이후는 프랑스에서 가족과 함께 지냈다. 『마담 X』작품의 스캔들은 타의반(他意半)으로 그로 하여금 29세에 영국으로 이주케하여 생을 마칠 때 까지 보냈다. 그의 고국인 미국은 20세에 시민권 허가를 위하여 처음으로 방문하였고 국제적인 명성을 날리자 미국에서 초상화 및 벽화의 활발한 주문과 함께 창작과 전시활동을 전개하였다.

그의 화풍은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에서 익힌 아카데믹의 사실주의 스타일이었다. 스승인 뒤랑에게서 그는 유화 제작 방식 중에 알라 프리마 (Alla Prima) 기법을 익혔다. 23세인 1879년에 서전트는 스승을 그린 『카롤뤼스 뒤랑의 초상화』를 파리 살롱에 출품했다. 이 작품은 3,000점이 넘는 회화 중에서 당당히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스승의 가르침은 캔버스에 구체적인 드로잉을 생략하고 붓으로 바로 칠하는 브러시 드로잉(Brush Drawing) 방식이었다. 이는 유화 물감이 마르기 전에 순발력과 생동감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또한 인상주의에서 채택되는 기법이며 그가 구사하는 초상화와 유화 페인팅에서 자주 표출되는 테크닉이었다. 그는 스승의 권유로 스페인의 벨라스케스로부터 진취적인 사실주의를 익혀 발전시켰다. 1874년 이후 인상파가 공식적으로 전개된 이후에는 친교가 있는 모네로부터 영향을 받아 파리에서 떨어진 지베르니 하우스를 4년간에 걸쳐 방문하면서 인상주의 화풍을 구사하되 특색 있는 효과를 얻었다.

20세기 초부터 서구 미술계의 흐름은 큐비즘 등 추상적 스타일의 예술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꾸준히 고전주의와 사실주의 작품으로 이어갔다. 그의 작품은 진보적 성향의 비평가들에게 변화하는 현실과 동 떨어진 그림으로 인식되어 비평을 받았다. 이러한 비판에도 “고전적 그림의 대가인 앵그르, 라파엘, 엘 그레코 등이 내가 찬미하는 대상이고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작업이다.”라고 자신의 길을 잃지 않았다.

서전트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지만 사생활은 거의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여성보다 남성의 누드를 많이 그려서 가끔 오해를 받았다. 그는 34세인 1890년부터 미국의 보스턴 공공도서관의 벽화를 주문받고 나서 신화 등에서 나오는 인물을 그리기 위하여 수많은 남녀의 누드 드로잉을 그려 남겼다.

또한 그는 주변에 여러 화가를 위시하여 작가, 조각가, 배우, 음악가 등의 예술가들과 우정을 쌓았으며 많은 초상화 작품을 남겼다. 서구 미술계에서 한 화가가 이처럼 많은 예술가들의 초상화를 그린 사람도 서전트 외에는 없을 정도였다. 학자들은 서전트가 26세에 그린 『장미를 든 숙녀』에서 모델이 된 샤롯 루이스 버카트와는 친밀한 관계였다고 의견 일치를 보이고 있다. 그녀는 30세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일찍 떠났다.

서전트의 대표작은 단연 『마담 X의 초상화』이다. 1884년에 작품이 완성되어 파리살롱에 전시된 이후에는 영국으로 가져가서 보관하고 있다가 31년 이후인 1915년에 미국의 미네아폴리스에서 전시로 재공개되었다. 이듬해인 1916년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이 작품을 1,000파운드로 구입한 이후, 현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에서 나아가 미국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전트는 27세의 젊은 나이로 자신이 먼저 미국 출신인 마담 구토에게 초상화 제작을 제안하였고 파리살롱 전시를 감안하여 모델의 여름 별장에서 최고의 기량을 쏟았다. 아름다움에 압도당한 그는 연필과 유화 및 수채화 등으로 다양한 자세를 취하게 하여 서른 번쯤이나 초상화를 그린 후에야 완성된 것이다.
파리살롱에 걸린 당초의 작품은 어깨끈의 한 쪽은 제대로 이었으나 다른 쪽은 자연스럽게 흘러내려져 있었다. 당시의 비평은 노골적인 나체화보다 더 도발적인 외설 작품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화가가 자기 작품을 세평에 의하여 수정하는 것은 예술가의 자존심으로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빗발치는 여론으로 서전트는 전시기간 중에 작품을 다시 그리겠다고 요구하였고 어깨 끈을 수정하여 살롱에 걸었다. 당초의 그림은 살롱이 찍어놓은 오직 흑백 사진으로만 남았다. 120년이 지난 2005년에 캐나다의 마이크 피존카라는 화가가 흑백사진을 가지고 원작을 복원하여 그려 남아있다.

서전트는 청년화가시절부터 국제적인 명성이 차츰 오르자 프랑스와 영국 및 미국에서 미술상과 훈장 및 학위는 물론이고 대통령 등의 저명인사의 초상화 주문과 유명 갤러리에서 전시의뢰가 이어졌다. 또한 영국에서는 왕이 기사 작위(Knighthood)를 제안하였다. 프랑스 정부는 영국으로 건너 간 이후에도 최고 영예인 뢰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미국은 서전트를 국내에 체류시키면서 미국화가로 자타가 인정하기 위해 그가 34세인 1890년부터 보스턴 공공도서관의 대형 벽화작업을 전담시켰다. 수차례 이 작업을 완성하는데 에는 1925년 그가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해까지 35년의 기간이 흘러갔다.

영국에서 서전트의 친구이자 미국인으로 활동한 예술가로 헨리 제임스(1843~1916)라는 유명작가가 있었다. 그는 20세기에 가장 뛰어난 미국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흥미 있는 사실은 영국과 미국이 가끔 그들을 자국의 화가와 작가라고 주장한 일이다. 아일랜드 이민자의 후손인 제임스는 미국 뉴욕에서 출생하고 하버드대를 다녔다. 30대 중반인 1876년에 프랑스 파리를 거쳐 런던으로 먼저 이주했다. 그는 서전트와 같이 계속 영국에 거주하다가 죽기 전해인 1915년에 영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제임스는 당시 무명인 서전트를 미국화단에 크게 소개하거나 영국의 고객을 유치하여 소개하면서 서전트를 도왔다. 1913년에 제임스의 후원연합은 70회 생일을 기념하여 서전트에게 초상화를 의뢰했다. 당시 서전트의 초상화 한 점 가격은 1억 원에 가까웠다. 그러나 서전트는 그림 값을 받지 않았다. 초상화를 받은 제임스는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생생하고, 나무랄 데 없는 걸작”이라고 찬탄했다. 위와 같이 영국과 미국은 두 사람을 아끼고 자랑했다.

서전트는 주로 평생토록 900점의 유화를 그렸는데 특히 상류사회의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그의 대형 작품당 초상화 가격은 약 5,000 달러로서 이는 현재 시가로 약 13만 달러이다. 그러나 기회가 될 때마다 유럽과 북미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초상화보다 마음속에 간직한 오랜 열정이었던 인상주의 스타일의 풍경화를 수채화로 남겼다. 특히 평생 2,000여점에 달한 수채화를 그릴 만큼 수채화의 대가였다. 1904년에는 영국 왕립 아카데미에서 수채화협회 정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이와 같이 그에게는 고액의 수수료를 받고 그리는 초상화 페인팅이 작업이었다면 수채화는 일종의 긴장을 식혀주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그의 초상화를 보고 비평가들은 가끔‘영혼의 화가’로 칭하고 있다. 인간의 외면을 충실히 그렸지만 내면의 정체성과 개성을 잘 묘사하는 극찬의 평가였다. 그는 영국의 왕실, 귀족, 예술가, 정치인, 중요인사 등 주로 상류사회 인사의 초상화를 수없이 그렸다. 그가 영국에서 체재할 때에도 미국의 부호와 중요인사들은 직접 서전트의 영국 스튜디오를 찾아서 작품을 의뢰했다. 미국의 대부호인 존 D. 록펠러의 초상화를 완성했던 1917년경에 서전트는 미국을 대표하는 거장화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초상화는 당시 다른 화가들처럼 실내에서 독서와 자연 속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상류층의 기존 초상화 스타일과는 달랐다. 감정이 살아 있는 듯한 초상화와 인물화로 그만의 자유로운 사고와 로맨티스트로서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만의 색깔을 분명히 표출한 초상화는 당대에 큰 인기를 끌었다.

그가 생각하는 제2의 고향은 프랑스보다 이탈리아와 영국이었다. 이탈리아는 서전트의 예술세계의 바탕으로 풍부한 감정의 기반을 마련해 주었던 곳이었다. 프랑스에서 10대 후반에서 20대까지 초상화가로 시작하였으며, 30대에 들어 영국에서 초상화 작업과 병행하여 풍경화 작업에 열중했다. 이때 서전트는 영국에 거주하면서 스케치 여행을 통하여 이탈리아의 자연과 고대문화가 주는 경이로움으로부터 창작의 모티브를 이끌어냈다. 이때는 베니스에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주로 베니스와 나폴리, 카프리, 피렌체, 로마, 시실리 등의 도시나 시골의 구석구석 풍경과 풍속을 묘사했다. 그는 일반 화가들과 여행객들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도시의 이면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렸다. 풍경화 속에는 부드러운 색채와 질감으로 차츰 잊혀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따뜻한 감성의 세계로 재현하면서 묘사했다. 심지어 그는 흔들리는 곤돌라 안에서 스케치 도구를 지니고 앙각(仰角)의 시점(視點)에 보이는 베니스의 수상 광경도 신비하게 그렸다.

서전트는 미국이나 영국의 화가라고 보기보다 단연코 세계적인 화가인 코즈모폴리턴(세계주의 Cosmopolitan)의 화가이었다. 이 책은 서전트가 국내에서 처음 되는 경우로 그가 그린 900점의 유화 작품 중에 최대한 많은 작품을 선정하여 해설과 함께 올렸다. 앞으로 독자들에게 유익하면서 재미있는 서전트의 여러 작품과 일화가 계속 발간되었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그의 모든 것은 우리들에게 과거 뿐 아니라 장래에도 인생과 예술에 대하여 귀중한 교훈과 귀감을 선사하고 있다. 특히 모든 예술인과 미술인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좋은 교양의 책이 되었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2015.10월
안양 스튜디오에서
조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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